두 함정이 전술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한쪽 함정의 무선 장비에 간섭이 발생하면 수신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지난 글에서 다룬 주파수 도약과 항재밍은 이런 전파 환경에서 통신을 유지할 가능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그런데 통신 장비는 멀쩡한데 중간 연결 경로 자체가 끊어졌다면 어떨까.
해상에서 육상 지휘시설로 정보를 보내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함정의 통신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해도, 육상으로 이어지는 중계 구간에 장애가 생기면 정보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 이때 문제는 신호를 얼마나 잘 보냈느냐보다 목적지까지 도달할 길이 남아 있느냐에 가깝다.
현대 군 통신망에서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여러 연결 수단과 복구 절차를 고려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통신 경로 이중화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통신망의 회복탄력성은 일부 장비나 경로에 장애가 생겨도 필요한 통신 기능을 유지하고 복구하는 능력이다. 장비를 두 대 놓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으며, 실제로 서로 다른 경로를 사용하는지, 장애 시 정보체계가 무엇을 계속 처리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무선 신호가 살아 있어도 정보는 도착하지 않을 수 있다
휴대전화에 신호 막대가 충분히 표시되는데도 웹페이지가 열리지 않는 때가 있다. 휴대전화와 기지국 사이의 무선 연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기지국 뒤쪽의 전송망이나 서버로 이어지는 다른 구간에서 장애가 발생했을 수 있다.
군 통신망도 원리상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통신은 송신기와 수신기 두 대만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계 장치와 네트워크 장비, 여러 통신 구간, 최종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가 연결되어야 한다. 한 부분의 상태만 좋다고 전체 서비스가 정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여기서 구분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무선 구간에서 신호를 제대로 주고받을 수 있는가. 둘째, 통신망 안에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경로가 존재하는가. 셋째, 전달된 데이터를 목적지의 정보체계가 유효한 정보로 처리할 수 있는가. 각각 다른 점검과 설계가 필요하다.

장비가 두 대라도 같은 길을 지나면 함께 끊길 수 있다
통신 경로 이중화를 이해하기 쉬운 예는 집으로 들어오는 인터넷 회선이다. 서로 다른 통신회사의 회선을 두 개 계약했다고 하자. 두 회선이 같은 건물 배관과 같은 물리적 구간을 지나가는데 그 구간이 손상된다면, 회선이 둘이라는 사실만으로 통신을 유지할 수는 없다.
이를 공통 장애 지점 또는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장비를 여러 대 갖췄더라도 하나의 전원 장치나 중계 장소, 케이블 구간에 공동으로 의존하면 그 부분의 고장이 여러 연결을 동시에 멈출 수 있다.
미국 CISA가 제시한 공공안전 통신망 복원력 지침에서도 대체 경로를 고려할 때 실제 경로의 다양성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같은 물리적 경로를 공유하는 중복 회선과, 서로 다른 구간을 지나는 회선은 장애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다르다.
군 통신망에 적용하면 장비 수량보다 의존 관계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 통신 수단이 모두 하나의 공통 시설이나 전원에 매달려 있다면 장애 위험은 여전히 남는다. 이중화는 수량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고장까지 서로 독립적으로 견딜 수 있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예비 경로와 우회 경로는 같은 말이 아니다
주요 회선이 멈췄을 때 사용하기 위해 평소 준비해 둔 예비 회선은 중복성을 높이는 수단이다. 반면 통신망의 어느 구간에서 장애가 났는지에 따라 목적지까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경로 변경 또는 우회의 개념이다. 둘은 함께 사용될 수 있지만, 같은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A에서 C까지 가는 통신이 평소 A-B-C 경로를 이용한다고 하자. B에 문제가 생겼을 때 A-D-C라는 대체 경로가 마련되어 있다면, 조건에 따라 장애 구간을 피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두 경로가 실제로 어느 자원을 공유하는지, 대체 경로의 용량은 충분한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모든 정보를 동일하게 전달할 필요도 없다. 대역폭이 부족하면 긴 영상 자료보다 짧고 중요한 상태 보고를 먼저 처리하도록 서비스의 우선순위를 설계할 수 있다. 어떤 정보가 우선인지는 운용 목적에 따라 달라지므로, 예비 연결을 확보하는 것과 그 연결을 이용해 무엇을 보낼지 결정하는 일은 별도 과제다.
| 구분 | 무엇을 준비하나 | 주의할 점 |
|---|---|---|
| 장비 이중화 | 동일 기능의 예비 장비 | 공통 전원·시설 장애 |
| 경로 다양화 | 서로 다른 연결 구간 | 실제로 경로가 분리되었는지 |
| 대체 통신 수단 | 다른 유형의 통신 방식 | 속도·지연·가용성 차이 |
| 정보체계 복구 | 저장·재전송·동기화 설계 | 오래된 정보의 오인 가능성 |
한 종류의 통신에만 의존하지 않는 이유
지상 유선망, 가시선 무선통신, 위성통신은 연결을 제공하는 방식과 제약이 다르다. 사용 환경에 따라 한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유리할 수도 있지만, 어떤 수단도 모든 장소와 상황에서 항상 최선인 것은 아니다.
위성통신은 육상 중계시설에 직접 연결하기 어려운 원거리 지역에서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면 위성 단말과 안테나, 위성 연결 자체에도 고유한 가용성 및 성능 제약이 있다. 무선 연결은 장비 사이의 거리와 지형의 영향을 받으며, 유선 경로는 물리적 시설의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통신 수단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미국 CISA의 관련 자료는 주요(Primary), 대체(Alternate), 비상대비(Contingency), 긴급(Emergency) 통신 수단을 구분하는 PACE 모델을 소개한다. 이는 서로 다른 수단을 미리 생각해 두는 계획 개념이지, 모든 통신망이 반드시 같은 네 종류의 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상 통신을 예로 들면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의 통신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어떤 수단을 주 경로로 정하고 언제 전환할지는 통신 환경과 임무의 요구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 운용 절차를 일반화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DDIL 환경에서는 평소처럼 통신할 수 없다
현대 군 통신망을 다루는 공개 자료에서 DDIL이라는 약어를 만날 수 있다. Denied, Degraded, Intermittent, Limited의 앞글자를 모은 표현으로, 통신이 거부되거나 품질이 저하되고, 간헐적으로 연결되거나 이용 가능한 자원이 제한되는 조건을 뜻한다.
이 네 가지는 모두 같은 장애 상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어떤 구간은 거의 이용할 수 없고, 다른 구간은 연결되지만 속도가 느릴 수 있다. 연결이 일정 시간마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환경도 있다. 이용 가능한 통신 자원이 제한되면 정상적인 업무를 모두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NATO는 2026년 디지털 전환 관련 실험에서 이와 같은 환경을 고려한 다중 네트워크 연결과 비지상 통신망 활용을 다루고 있다. 통신 경로가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전술적 수준까지 필요한 연결을 지원하려는 방향이다.
이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상 상태에서 빠르고 안정적인 통신망만 설계해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에서는 연결의 품질이 지속적으로 달라지고, 사용 가능한 네트워크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통신이 끊어져도 정보체계가 해야 할 일은 남는다
지휘통제체계(C4I)를 생각하면 통신 복구의 의미는 더욱 넓어진다. 앞서 설명한 통신 경로 장애가 해소되어도 정보체계는 곧바로 정상적인 상황인식을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
설명을 위한 가상 상황을 보자. 함정 A는 특정 표적의 위치를 오전 9시 10분에 관측했고, 그 정보를 전송하려던 순간 연결이 끊어졌다. 9시 15분에 연결이 복구되어 정보가 도착했다면, 수신 체계는 이 위치가 관측된 시각과 수신한 시각을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오래된 위치를 현재 위치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경우 통신망이 복구되는 것과 정보가 유효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관측 시각, 데이터의 출처, 갱신 순서, 중복 여부가 중요한 이유다. 장애 중 임시로 보관했던 데이터를 한꺼번에 전송하면 정보가 순서대로 도착하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모든 데이터가 같은 복구 방식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일정 시간이 지난 위치 정보는 다시 요청하는 편이 나을 수 있고, 누락되어서는 안 되는 관리 기록은 추후 동기화가 필요할 수 있다. 정보의 성격을 구별하는 일이 통신망 설계와 정보체계 설계의 접점이 된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연결뿐 아니라 의존 관계를 봐야 한다
통신망 회복탄력성을 평가할 때에는 회선이 몇 개인지 외에도 장애가 발생하면 실제로 어느 기능이 멈추는지 따져봐야 한다. 서로 다른 장비가 같은 전원에 의존하는지, 대체 경로가 같은 중간 시설을 지나는지, 경로 변경 뒤에도 필요한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는지가 판단의 대상이다.
네트워크 상태를 점검하는 방법 또한 하나의 숫자로 설명하기 어렵다. 연결 성공 여부, 지연 시간, 데이터 손실, 서비스 복구 시간, 정보의 유효성 등은 각각 다른 질문에 답한다. 빠르게 복구된 통신망이라도 중요한 정보가 누락되었다면 사용자가 느끼는 서비스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 수 있다.
민간 재난통신과 군 통신망은 운용 목적과 제약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주요 연결이 중단되더라도 필수 기능을 가능한 한 유지하고, 장애 이후에는 신뢰할 수 있는 상태로 복구해야 한다는 기본 과제는 공유한다. NATO가 2026년 회복탄력성 기준에서 민간 통신의 지속성과 비상계획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상호 의존성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군 정보통신에서는 장비가 정상 동작한다는 보고와 임무에 필요한 정보가 제때 도착한다는 사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통신 경로가 여러 개라는 설명도 실제로 어떤 공통 장애를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의미가 줄어든다. 더 나아가 연결이 복구된 뒤 오래된 보고를 최신 정보와 혼동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까지 생각하면, 통신망의 회복탄력성은 정보체계의 데이터 처리 능력과 분리하기 어렵다. 군도 과거에는 생존성을 얘기하다가 지금은 회복탄력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무조건 살아남는 것이 아닌 어떤 순간에도 임무가 진행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선 글에서 다룬 항재밍이 전파 방해에 대응하는 한 가지 기술이라면, 이번 글의 통신 경로 이중화와 회복탄력성은 더 넓은 문제를 다룬다. 한 경로가 어려워져도 다른 통신 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돌아온 연결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여전히 쓸 만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통신망이 끊어진 동안 정보는 계속 생성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그 데이터가 어디에 남고, 연결이 돌아왔을 때 어떤 순서로 전달되며, 오래된 정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여기서부터는 통신 기술의 이야기가 C4I 정보체계의 데이터 관리 문제로 이어진다.
앞선 글은 주파수 도약을 비롯한 항재밍 기술이 전파 방해에 대응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이번 글의 통신 경로 이중화와 비교하면 무선 구간의 보호와 통신망 전체의 복원력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쉽다.
군 통신은 전파 방해를 어떻게 견딜까? 주파수 도약과 항재밍 기술의 원리
멀리 떨어진 두 함정이 무선으로 전술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송신 장비는 정상이고 암호 설정에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대 함정이 보내는 정보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무선
info-meer.com
- NATO Allied Command Transformation — The Backbone of NATO’s Digital Transformation: DiBaX26. DDIL 환경과 다중 네트워크 연결에 관한 공개 설명. 공식 자료
- NATO — 2026 Resilience Baseline Requirements. 민간 통신 서비스의 지속성과 비상계획에 관한 기준. 공식 자료
- CISA — Public Safety Communications Resiliency: Ten Keys to Obtaining a Resilient Public Safety Network. 경로 다양성과 중복성에 관한 설명. 공식 자료
- CISA — Resilient Power Best Practices for Critical Facilities and Sites. 독립적 통신 수단을 고려하는 PACE 개념 참고. 공식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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